지갑은 얇아지는데 화장은 진해진다. 불황이 만든 기이한 소비 공식 립스틱 효과

뉴스를 틀면 연일 ‘역대급 불황’이라는 단어가 쏟아지고,
점심값 만 원 시대에 직장인들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닌다.
그런데 참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밥값은 아끼면서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는 북적인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 매장은 한산해도,
5만 원짜리 명품 립스틱은 불티나게 팔린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립스틱 효과’라고 부른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저가임에도 기분 전환을 확실하게 시켜주는 사치품 판매량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겉으로 보기엔 ‘알뜰한 사치’ 같지만,
이 현상의 이면을 들추면 우리가 처한 팍팍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포기할 수 없는 만족감, 혹은 최후의 보루

불황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소비 욕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이 팍팍해질수록 심리적 보상 심리는 커진다.
하지만 지갑 사정은 뻔하다.
예전 같으면 큰맘 먹고 샀을 가방이나 옷은 이제 그림의 떡이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립스틱이다.

샤넬 가방을 사는 건 불가능해도 샤넬 립스틱은 살 수 있다. 적은 돈으로 ‘명품을 소비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셈이다.

겉옷은 낡은 것을 입더라도 속옷만큼은 화려한 것을 사거나,
비싼 향수를 구매하는 심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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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합리적인 소비라기보다는,
쪼그라든 현실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에 가깝다.

왜 우리는 작은 사치에 목을 매는가?

단순히 기분 전환이라고 치부하기엔 립스틱 효과가 시사하는 바가 무겁다.

도대체 왜 우리는 밥값을 아껴 립스틱을 사고,
미래를 위한 저축 대신 오늘의 소확행을 택하게 되었을까.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이 립스틱과 같은 작은 사치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

현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탈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면 구조조정의 공포, 치솟는 물가, 정체된 월급 등 일상이 스트레스 덩어리가 된다.
이를 견디기 위해서는 당장 내 손에 쥐어지는 확실한 보상이 필요하다.

왜 하필 그 보상이 자산 증식이 아닌 소비 형태인가

이는 큰 목표를 이루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체념에서 비롯된다.
과거에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면 ‘내 집 마련’이라는 큰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때의 절약은 희망을 담보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체념은 왜 발생했는가

자산 가격의 상승 속도가 근로 소득의 증가 속도를 압도해버린 자산 인플레이션과 양극화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의 가치는 똥값이 되었고,
이미 자산을 가진 자들의 부는 하늘 모르고 치솟았다.
사다리가 끊겨버린 것이다.

결국 사다리가 끊긴 세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어차피 아껴봐야 부자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도 챙기자는 심리가 지배한다.
립스틱은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라,
닿을 수 없는 꿈 대신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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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도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절망

성실함이 배신당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은 거대한 성취 대신 립스틱 한 자루,
비싼 디저트 한 조각이라는 아주 작고 확실한 행복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립스틱 효과는 경제 지표로 쓰이지만,
사실은 사회의 우울 지표다.

거리에 짙고 화려한 립스틱을 바른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삶이 팍팍하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우리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립스틱을 사고 속옷을 사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마취제에 가깝다.

불안한 미래와 답답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다.

경기가 좋아져서 립스틱 대신 튼튼한 적금 통장이나 내 집 마련의 꿈이 다시 유행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화려한 쇼핑백을 들고 나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헛헛한 이유는,
이 작은 사치가 결코 우리의 가난해진 미래를 구원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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