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원달러 환율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불안감이 감도는데, 정부는 이 사태의 원인으로 뜻밖의 대상을 지목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꼬박꼬박 납부한 노후 자금, 국민연금입니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외환시장을 뒤흔드는 거대 고래로 규정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틀, 즉 ‘뉴 프레임워크’를 짜겠다고 나섰습니다.
당장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국민들 쌈짓돈을 환율 방어용 소방수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지금 연금의 외환 투자를 조절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받을 연금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를 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 속에 숨겨진 진짜 원인을 껍질 벗기듯 하나씩 파헤쳐 보겠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정부의 논리는 지금 비싸게 사서 나중에 헐값에 팔 텐가
정부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를 건드리려는 명분은 생각보다 치밀합니다.
핵심은 환차손, 즉 환율 때문에 앉아서 돈을 까먹는 상황을 막자는 것입니다.
지금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이나 채권을 사기 위해 원화를 팔고 달러를 미친 듯이 사들이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환율이 높은데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정부는 이 지점을 꼬집습니다.
지금처럼 환율이 비쌀 때 달러를 사재기해서 투자하는 건 손해라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미래입니다.
약 10년 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본격적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할 때가 오면 국민연금은 가지고 있던 해외 자산을 팔아 다시 원화로 바꿔야 합니다.
그때 국민연금이 쥐고 있던 막대한 달러를 한꺼번에 시장에 풀면 어떻게 될까요.
환율은 급락할 것이고 원화 가치는 오를 겁니다.
결국 지금 환율이 비쌀 때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하고,
나중에 연금을 줄 때는 환율이 바닥일 때 헐값에 달러를 팔아치우는 최악의 장사를 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투자해서 수익을 좀 냈다고 하더라도 환전 과정에서 다 까먹을 수 있으니,
장기적인 수익성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환율 변동성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왜 국민연금은 밖으로만 나도는가?
정부 말대로라면 국민연금은 국내에서 얌전히 투자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기을 쓰고 환율 위험까지 감수하며 해외로 나갈까요.
이유는 간단하고도 처참합니다.
한국이라는 우물이 국민연금이라는 고래를 감당하기엔 너무 좁고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의 덩치는 기형적으로 커졌습니다.
운용 자산만 1300조 원이 넘어 세계 3위 규모이고,
이미 우리나라 전체 외환보유고보다 더 많은 달러를 굴리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돈이 좁디좁은 국내 주식시장에 갇힌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 증시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박스피’입니다.
수익은커녕 거대한 자금을 받아낼 그릇조차 되지 못합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연금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생명줄입니다.
국내에 있으면 돈이 불어나지 않고 고갈 시계만 빨라지니,
살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처지인 겁니다.
5단계로 파고든 진짜 원인
그렇다면 어쩌다 한국 시장은 제 나라 연금 하나 품지 못할 만큼 매력을 잃었을까요.
왜 연금은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었을까요.
왜 정부는 연금을 통제하려 하는가?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할 만큼 덩치가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연금이 움직이면 환율이 출렁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왜 연금은 해외로만 도는가?
국내 시장은 수익률이 낮고 규모가 작아 더 이상 돈을 굴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국내 시장은 매력이 없는가?
한국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의 늪에 빠졌고, 기업들의 성장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입니다.
왜 경제는 멈췄는데 연금만 이렇게 커졌는가?
과거 고성장기에 수많은 인구가 낸 돈으로 기금은 급속도로 불어났지만,
이를 받쳐줘야 할 국가 경제(GDP)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몸(실물 경제)은 성장을 멈췄는데, 지갑(연금 자산)만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불균형입니다.
이것이 이 사태의 본질입니다.
나라 경제가 펄펄 끓어서 수출로 달러를 쓸어 담고 있다면,
연금이 해외 투자를 위해 달러를 좀 가지고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들어오는 돈이 나가면 돈을 메꿔주니까요.
하지만 지금 한국은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달러 벌이는 시원찮은데,
덩치 큰 연금은 살길 찾겠다고 달러를 싸 들고 밖으로 나가는 상황입니다.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만 많으니 환율은 폭주하고,
정부는 부랴부랴 연금 팔을 비틀어 문을 걸어 잠그려는 형국입니다.
정리하자면,
정부가 내놓은 ‘뉴 프레임워크’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성장이 멈춘 국가가 비대해진 연금을 감당하지 못해 내놓은 고육지책일 뿐입니다.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
즉 기초 체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투자처가 국내에 없다면 국민연금은 계속해서 밖으로 나갈 것이고,
그때마다 외환시장은 요동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