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선 가격 당신 앞에 놓이는 순간, 이미 뭔가가 시작됩니다
쇼핑앱을 열었어요.
마음에 드는 원피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89,000원 49,900원.
심장이 살짝 뛰었어요.
“반값이네.”
손가락이 장바구니 버튼 위로 갑니다.
이 글은 그 0.5초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사해본 기록이에요.
여러 사건과 연구, 실제 적발 사례들을 모아보니 흥미로운 구조가 보이더라고요.
“58% 할인”이라고 적혀 있었는데요. 실제로는 7%였습니다.
2025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알리익스프레스를 적발했어요.
레노버 태블릿 하나.
알리에 표시된 정가는 66만 원.
할인가는 27만 7천 원.
화면에는 “58% 할인”이라고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태블릿의 국내 실제 출시가는 29만 9천 원이었어요.
66만 원에 판매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제 할인율은 58%가 아니라 7% 수준이었어요.
이런 상품이 7,500개.
공정위는 과징금 20억 9,300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비즈워치 , “58%라더니 사실은 7%”…소비자 홀리는 눈속임 할인, 2025.9.6)
(중앙일보 , 알리익스프레스 허위 할인율 광고 7500여건, 2025.8.31)
이걸 보고 든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 66만 원이라는 줄 그어진 숫자.
그게 진짜가 아닌데도, 왜 우리 눈에는 이득으로 보였을까요?
뇌가 첫 번째 숫자에 잠기는 현상. 1974년 실험 하나가 있었습니다
1974년, 심리학자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실험을 했어요.
참가자들에게 행운의 바퀴를 돌리게 했습니다.
바퀴는 조작돼 있었어요. 10 아니면 65에서 멈추게요.
그 뒤 질문했습니다.
“UN 회원국 중 아프리카 국가 비율이 몇 %일까요?”
바퀴에서 10이 나온 사람들은 평균 25%라고 답했어요.
바퀴에서 65가 나온 사람들은 평균 45%라고 답했습니다.
바퀴 숫자와 아프리카 국가 비율은 아무 관련이 없는데요.
처음 본 숫자가 판단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걸 앵커링 효과라고 부릅니다.
(Tversky & Kahneman, 1974 , Science)
취소선 가격에서 줄이 그어진 숫자가 바로 이 앵커예요.89,000원을 먼저 보는 순간,
뇌는 이미 89,000원을 기준으로 세팅됩니다.
그래서 49,900원이 싸다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49,900원이 실제로 적정한 가격인지,
다른 곳에서 39,000원에 살 수 있는지,
그런 건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39,100원 아꼈다”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안 사면 손해”라는 느낌. 이건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었습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또 다른 이론을 발표했어요.
전망이론(Prospect Theory, 1979).
핵심은 이거였습니다.
사람은 10만 원을 잃을 때의 고통이
10만 원을 벌 때의 기쁨보다 약 2배 더 크다고 해요.
(Simply Psychology , Prospect Theory)
취소선 가격은 이걸 이렇게 자극하더라고요.
“지금 사면 39,100원 절약.”
이건 이득처럼 보이지만,
뇌가 실제로 반응하는 메시지는 이거였어요.
“지금 안 사면 39,100원을 잃는 거야.”
이득을 얻는 기쁨보다
이득을 놓치는 공포가 더 큽니다.
그래서 장바구니 버튼이 눌리는 거예요.
앵커링이 기준점을 심고,
손실회피가 “지금 안 사면 손해”라는 긴급함을 만들어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순간이,
바로 취소선 가격을 보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줄 그어진 숫자를 누가 정하는 걸까요?
여기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졌어요.
쇼핑몰에서 상품 옆에 뜨는 원래 가격은 판매자가 직접 입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존에서는 List Price 필드에 판매자가 숫자를 넣어요.
쿠팡에서는 판매자센터에서 판매가와 할인가를 따로 설정할 수 있고요.
문제는, 한 번도 그 가격에 팔린 적 없는 숫자를 넣어도 시스템이 그대로 표시해준다는 거예요.
알리익스프레스 사례가 정확히 이거였습니다.
66만 원에 팔린 적 없는 태블릿에 66만 원을 정가로 입력.
시스템은 자동으로 “58% 할인”을 계산해서 화면에 띄워줬어요.
(한겨레 , 가짜 정가로 할인율 과장…알리익스프레스에 과징금 21억원, 2025.8.31)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니,
이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쪽은 플랫폼이었습니다.
원래 가격 입력 필드를 제공하는 것도 플랫폼.
취소선을 자동으로 그어주는 것도 플랫폼.
빨간색으로 할인율을 강조하는 UI를 디자인한 것도 플랫폼이에요.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은 프로젝트 네시라는 내부 알고리즘을 운영하면서 가격을 끌어올려 10억 달러 이상의 추가 수익을 만들어낸 것으로 FTC 소송에서 밝혀졌습니다.
(Reuters , Amazon made $1 billion through secret price raising algorithm, 2023.11.2)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구조가 발견됐어요.
쿠팡은 와우멤버십 가입 전 화면에 상품마다 할인가를 대대적으로 표시했거든요.
“가입하면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입하면? 해당 할인은 제한적 쿠폰으로만 적용됐고,
표시된 할인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요.
공정위는 이를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제재에 착수했습니다.
(KBS , 가입하자 사라진 할인…쿠팡 할인가 도배 공정위 제재 착수, 2025.10.16)
(YTN , “가입하니 사라진 할인가”…쿠팡 제재 착수, 2025.10.17)
그러면 할인은 전부 거짓말인가요? 반대 사례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건을 발견했어요.
2012년, 미국 백화점 J.C. Penney의 새 CEO 론 존슨은
쿠폰과 세일을 전부 없앴습니다.
“정직한 가격”을 선언했어요.
더 이상 가짜 할인 없이, 처음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보여주겠다고요.
결과요?
매출이 20% 이상 폭락.
고객들이 떠나버렸어요.
존슨은 1년 만에 해고됐습니다.
(TIME , Why JCPenney’s No More Coupons Experiment Is Failing, 2012.5.17)
(Paddle , Lessons from the failure of J.C. Penney’s pricing strategy)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게 있었어요.
소비자 중 상당수는 “할인받고 있다”는 느낌 자체에 가치를 두고 있었던 거예요.
같은 가격이라도, “원래 100인데 70에 산다”와 “그냥 70이다”는 완전히 다르게 느꼈던 거죠.
취소선 가격이 항상 소비자에게 손해인 것은 아니더라고요.
실제로 할인이 맞는 경우도 있고,
시즌 마감이나 재고 정리처럼 원가 구조상 진짜 가격을 낮추는 상황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진짜 할인과 가짜 할인은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요
각각의 사례를 조합해보니 패턴이 보였어요.
가짜 할인 신호부터 볼게요.
이마트는 1,500원에 팔던 주스를 3,000원으로 올린 뒤, 다시 1,500원으로 내리면서 “50% 할인”이라고 광고했습니다. 공정위에 적발됐어요.
(공정거래위원회 , 대형마트 4개사 부당한 표시광고 제재)
미국에서도 J.C. Penney는 한 번도 판매된 적 없는 가격을 원래 가격으로 표시해 5,000만 달러, 약 670억 원 규모의 집단소송 합의를 했고요.
(NYT , J.C. Penney Settles, 2015.11.11)
진짜 할인 신호도 있었습니다.
시즌 종료 상품, 모델 교체기 전자제품, 유통기한 임박 식품.
이런 경우는 원가 구조상 재고를 빨리 소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사건들을 모아보니, 구분을 어렵게 만드는 건 바로 상시 취소선이었어요.
항상 줄이 그어져 있으면, 언제가 진짜 할인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FTC가 2022년 보고서에서 경고한 다크 패턴 중 하나가 정확히 이거였어요.
(FTC , Dark Patterns Report, 2022.9.15)
지금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놓고 보니, 흐름이 보이더라고요.
2023년. 아마존 FTC 소송, 알고리즘 가격 조작 논란 시작.
2025년 8월. 알리익스프레스 과징금 21억 원.
2025년 10월. 쿠팡 공정위 제재 착수.
2026년 2월. 미국 법률 전문지가 취소선 가격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
(Corporate Counsel , Strike-Through Pricing Schemes Targeted, 2026.2.9)
캘리포니아주법은 이미 광고 전 3개월 이내에 실제 거래된 가격이어야 원래 가격으로 표시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고요. 한국 공정위도 온라인 할인율 거짓 및 과장 표시에 대해 최근 3년간 8건의 직권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책뉴스 , 공정위 온라인 할인율 거짓 과장 표시광고 엄중 조치 중, 2025.10.21)
이 흐름을 보면,
아직 말해지지 않은 부분도 보여요.
현재 한국의 모든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이 취소선 가격을 기본 UI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래 가격의 진위를 실시간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규제는 사후 적발 방식이고, 적발까지 수개월이 걸립니다.
그 사이 소비자는 이미 결제를 끝낸 뒤예요.
노력 대비 가장 효율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 자료를 조합해보니, 한 가지 행동이 가장 효율적이었어요.
가격 이력 확인이에요.
네이버 쇼핑의 가격 변동 추이 그래프.
아마존의 경우 CamelCamelCamel 사이트.
구글 플레이에서 Price History Tracker 앱.
이 도구들은 해당 상품이 지난 3개월간 실제로 얼마에 팔렸는지를 그래프로 보여줍니다.
만약 그래프가 거의 일직선이라면요?
그 상품은 줄곧 비슷한 가격에 팔려온 거예요.89,000원 49,900원이라고 적혀 있어도,
실제로는 계속 49,900원 근처에서 거래된 상품일 수 있습니다.
(Google Play , Price History Tracker)
그리고 하나 더 발견한 게 있어요.
“할인율” 대신 “최종 가격”에 집중하는 거예요.
“50% 할인”이라는 문구는 앵커링을 작동시키는 트리거입니다.
그 문구를 지우고 “49,900원짜리 원피스”라고만 놓으면,
비로소 “이 옷에 49,900원을 쓸 가치가 있나?”라는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Capital One Shopping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는 충동구매에 월 평균 282달러, 약 37만 원을 쓴다고 해요.
그리고 그 충동구매의 핵심 트리거 중 하나가 바로 할인 표시였습니다.
(Capital One Shopping , Impulse Buying Statistics 2025)
정리.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기까지 모은 사실들을 나열해봤어요.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실험에서는 처음 본 숫자가 판단 기준이 됐습니다.
전망이론에서는 잃는 고통이 얻는 기쁨의 2배라고 밝혀졌어요.
알리익스프레스는 실제 7% 할인을 58%로 표시했다가 과징금 21억 원을 받았습니다.
쿠팡은 멤버십 할인가 표시 후 실제 혜택이 미적용돼 공정위 제재가 착수됐어요.
이마트는 가격 올린 뒤 원래 가격으로 돌려놓고 “50% 할인” 광고를 했다가 적발됐습니다.
J.C. Penney는 정직한 가격을 시도했더니 매출 20% 폭락 후 CEO가 해고됐어요.
아마존은 내부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조작해 10억 달러 추가 수익을 올렸습니다.
FTC는 다크 패턴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고 경고했고요.
취소선 가격 자체가 나쁘다거나 좋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다음에 89,000원 49,900원을 보는 순간,
그 줄 그어진 숫자가 진짜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 숫자를 보고 내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 정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같은 화면 앞에서 완전히 다른 결정이 나올 수 있더라고요.


